S군의 화폐박물관



상평통보 당일이다.

당일전은 19세기에 활발하게 주조된 상평통보이다.

초주단자전에서 당이전, 그리고 중형전에서 당일전으로

상평통보의 크기는 크고 작음을 반복하게 된다.

조선의 여러가지 이유는 있겠지만

엽전을 제조하는데 드는 원료의 문제가 큰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속 상평통보는 조잡하다.

상평통보에도 상중하 등급이 있다면,

사진 속 엽전은 하 등급의 엽전이다.

그만큼 볼품없는 엽전이란 얘기이다.


사진 속 상평통보의 뒷면에 이 엽전의 역사적 흔적이 묻어있다.

상단에 있는 '平'자평안감영(平安監營)에서 주조되었다.

*평양감영, 평안감영 모두 비슷한 말이다.

*평안감영은 평안북도와 남도를 관리하는 관청이다.


이 엽전이 주조된 시기는 조선 후기인 1892년,

당시 평안감사는 민병석이라는 인물이다.


민병석은 명성황후 민씨와 같은 여흥 민씨 출신이다.

즉 외척 세력인 셈이다.

그는 1889년부터 5년간 평안감사를 지내게 되는데,

백성들의 원성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고종 실록과 고종 시대사에 따르면 

[1890년 2월  전환국의 계언에 따라 전환국 주소를 평양부에 분설하고, 

관찰사 민병석으로 하여금 종사 고주케 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 '典'(전환국) 주조의 당오전의 경우, 상태가 좋지 않은 것들이 다수 있다.

이 또한 민병석이 주조한 당일전과 맥락을 함께해야 한다.


당오전 주조로 갑부가 된 민병석은 만족하지 않고,

고종에게 당일전 주조를 건의해 1890년 재가를 받게 된다.


이 당일전의 소재 가치는 기존 당일전 1문의 1/3에도 못미쳤고 

(품질이 좋은 당오전 1매를 용해하면 평양전 5매를 주조 할 수 있는 양)이었으며 

또한, 이 조잡한 평양전에 동색이 나도록 다시 구리로 도금하였다고 원유한의 당오전고에서 전하고 있다.


이렇게 주조된 평양전은 서울로 공수하여 당오전과 1대1로 교환하거나 

그보다는 20% 낮게 계산되어 교환 유통 되었기 때문에 

유통계는 당오전에 이어 또다시 대혼란을 맞게 되고 주조 규모는 엄청나서 

평안부에서1893년에 일본 상인에게서 수입한 동이 83만 2천근에 이르렀다 한다.

 

 일본인의 경제 잡지의 기록에 의하면 

"평양에서는 비밀리에 미국인과 결탁하여 

그들의 자본을 빌려 악주를 주조하고 있으니 심히 염려 스럽다"는 기록이 있는것으로 보아 

민병석의 평양전 주조는 여러 방면의 특정 세력이 주도적으로 

주전 차익의 이익을 노리고 참여 했었던 듯 하다.

 

 이에 경제가 날로 심각한 상황에 이르자 고종에게 민병석의 주조 행위를 징주하고자 건의하게 되었으나 평양전은 청일 전쟁이 발발되며 평양이 전쟁터로 휘말려 들어감에 따라 주조가 자연스레 정지 되게 된다.


고종 29년(1892년) 12월 14일 

 

평안 감사(平安監司) 민병석(閔丙奭)이 올린 상소 대략에,

“화폐를 주조하는 문제는 백성과 나라의 대사(大事)입니다. 애초에 신과 같이 어리석은 자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난번 전하의 은혜를 지나치게 입어 저의 재주로는 감당하지 못할 임무를 맡게 된 지 이미 한 해가 넘었습니다.

요즘 삼가 의정부(議政府)에서 올린 차자(箚子)를 보니 화폐의 폐단을 논하고 이어 평양(平壤)의 친군영(親軍營)에서 만든 얄팍하고 볼품이 없는 돈을 섞어서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물가가 폭등하고 인심이 놀라 당황하였고 하였으니 신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대개 그 임무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데 신의 경솔함으로 인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신이 감히 무슨 말로 스스로 속죄하겠습니까?

다만 한데 섞어 사용되는 소전(小錢) 한 닢이 5냥(兩) 값어치가 된 것은 신으로서는 미리 예측하지 못한 것입니다. 주조(鑄造)한 형태가 작고 얄팍한 것은 비록 본래의 규모는 아니었지만 이미 신중하고 자세하게 살피지 못하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와 같이 심하게 그르치게 되었으니 스스로 신의 죄를 돌아보건대 실로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만약 종전대로 감사(監司)의 직책에 눌러 앉아 돈을 주조하는 일을 겸하여 맡아본다면 앞으로 그르치게 될 것은 도리어 오늘보다 더 심할 것이 분명합니다. 속히 돈을 주조하는 일을 그만두도록 명을 내리고 신이 맡고 있는 직임을 거두시고 신에게 마땅히 적용하여야 할 법을 적용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이처럼 인혐(引嫌)할 필요가 없다. 경은 사직하지 말고 관찰사 책무에 더욱 힘쓰라.”

하였다.


민병석은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포함되어 있는 인물이다.


평안감사 민병석과 친일파 민병석.

민병석은 생애내내 조선의 백성들을 괴롭히던 나쁜 인물인 것만은 분명하다.


19C 초반, 즉 1836년에 평안감영에서 주조한 상평통보 당일전의 경우,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평안감영에서 주조한 당일전이라고 무조건 사진 속 상평통보와 같은 상태가 아님을 밝힌다.


* 위 내용 중 일부는 돈키호테 님의 블로그 글의 일부를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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