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방정환 선생
도안 메달
매년 5월 5일이면, 곳곳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거리가 들썩거립니다. 어린이들을 위해 한 평생 노력하신 소파 방정환 선생.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그가 도안된 메달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생애와 활동
소파 방정환 선생은 1899년 11월 9일 서울 당주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소파는 10살 때 ‘소년입지회’를 조직하여 토론과 연설회를 개최하였고, 1917년에는 천도교 제3대 교조 손병희의 첫째 딸 용화와 결혼하게 됩니다. 소파는 1919년 3.1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1주일 만에 석방되게 됩니다.
1920년 3월, 소파는 일본 도요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여 아동예술과 아동심리학을 연구하게 됩니다. 1920년 8월 25일 ‘어린이’라는 말은 천도교인들이 주를 이룬 「개벽」 지에 처음 사용하는 것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소파는 1921년 ‘천도교 소년회’를 조직하게 되고, 1922년 5월 1일 처음으로 ‘어린이의 날’을 제정하게 됩니다. 1923년 3월,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하였고, ‘색동회’를 창립하였습니다.
같은 해 5월 1일, ‘어린이날’ 기념식을 거행하고 「어린이날의 약속」 이라는 전단 12만장을 배포하였습니다. 1925년에는 제3회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동화구연대회를 개최하였고, 1928년 10월 2일 세계 20여 개 나라 어린이가 참가하는 ‘세계아동예술전람회’를 개최하였습니다. 한 평생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가진 소파는 1931년 7월 23일,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소파는 생을 마감하며,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어린이에 대한 소파의 사랑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어린이와 어린이날의 제정 배경 방정환 선생은 처음에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종조부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갑작스레 기울게 됩니다. 밥을 굶고 쌀을 꾸려 다닐 정도로 가난한 생활을 한 소파는 당시 어린이들이 단지 어른들의 편리한 도구로밖에 인정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깨닫고, 어린이의 인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당시 어린이들은 ‘장유유서’라는 유교적 가부장제도 아래에서 천대받고 억압받는 존재였습니다. 소파는 어린이들이 좀 더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는 존재가 되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늙은이’, ‘젊은이’와 같이 아동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격상시키는 뜻이 담긴 ‘어린이’라는 호칭을 쓸 것을 주창했습니다. 1922년 5월 1일 처음으로 ‘어린이의 날’을 제정하여 어린이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일제는 선생을 가만히 두지 않고, 가진 탄압을 하게 됩니다.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소파는 어린이들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선생의 사망 후인 1946년 5월 5일, ‘어린이날’이 제정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소파는 어린이날에 배포한 「어린이날의 약속」에서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어린이를 어른보다 더 높게 대하십시오. 어린이는 결코 윽박지르지 마십시오. 어린이의 생활을 항상 즐겁게 해주십시오. 어린이는 항상 칭찬해가며 기르십시오. 어린이의 몸을 자주 주의해 보십시오. 어린이에게 잡지를 자주 읽히십시오.”라고 하며 어린이는 새시대의 새인물로서 인식되고 존중받아야 하는 인격체임을 지적하였습니다.
어린이날은 공휴일로 지정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날입니다. 단순한 공휴일 또는 어린이를 위한 날도 좋지만, 어린이를 위해 노력한 소파 방정환 선생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공감 버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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