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
들여다보기.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천원 지폐는 3번의 변화를 거친 다 1,000원입니다. 사람들은 첫 번째 발행한 지폐는 가, 그 이후 화폐에 변화를 주게 되면 나, 다 ... 이렇게 한글 자음 순서대로 이어집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1,000원 지폐의 할아버지라 할 수 있는 가 1,000원은 1975년 8월 14일에 발행을 시작했습니다. 지금과 지폐의 디자인과 색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가 1,000원의 발행을 중지한 한국은행은 1983년 6월 11일부터 나 1,000원을 발행했습니다. 그러니 가 1,000원의 경우 1975년부터 1983년까지 발행되고 사용된 셈입니다. 아마 지금도 나 1,000원의 경우, 시장이나 은행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다 1,000원 지폐는 2007년 1월 22일부터 발행을 실시했습니다. 위조지폐를 방지하기 위해 새롭게 만들었으며, 기존의 가, 나 천원 지폐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천원 지폐에 도안된 인물은 모두 잘 알고 있듯이 퇴계 이황입니다. 이황 선생은 성리학을 크게 발전시킨 걸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이 사후, 그의 학문을 기리기 위해 도산서원을 세웠습니다.
가 1,000원의 앞면에는 우리나라의 국화인 무궁화와 퇴계 이황 선생의 초상화가 도안되어 있습니다. 뒷면에는 도산서원이 도안되어 있습니다. 가 1,000원의 경우, 이황 선생의 표준영정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원판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표준영정 속 퇴계 이황>
<가 1,000원 속 퇴계 이황>
<나 1,000원 속 퇴계 이황>
<다 1,000원 속 퇴계 이황>
나 1,000원의 경우, 앞면에는 우리의 전통놀이인 투호가 도안되어 있습니다. 항아리에 화살을 던지며 하는 놀이인데 주로 양반들이 즐겨했습니다. 뒷면은 가 1,000원과 동일하게 도산서원 도안입니다.
<다 1,000원 속 명륜당>
<명륜당 실물. 출처: 성대신문>
<다 1,000원 속 매화>
다 1,000원은 퇴계 이황의 초상화와 함께 명륜당과 매화가 도안되어 있습니다. 명륜당은 성균관의 유생들이 공부를 하던 곳입니다. 왕이 직접 방문해 유생들을 격려하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안에 있습니다.
매화는 매실나무의 꽃을 일컫는 말입니다. 매화가 이황 선생의 초상화와 함께 천원에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황 선생이 지은 한시 하나를 보겠습니다.
소나무 국화 이 동상에서 대나무와 더불어 세 벗이 되었네.
매화는 어이하여 셋과 함께 못하는가.
이제 나는 어울려서 풍상계를 만드네.
굳은 절개 맑은 향기 내 짝으로 만족하도다.
<매화와 벗하며>
이황 선생은 매화를 많이 좋아했다고 합니다. 매화와 관련된 일화와 한시가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뒷면에는 계상정거도라는 정선이 이황 생존시의 건물인 서당을 중심으로 주변 산수를 담은 조선시대의 풍경화입니다. 이 그림은 지난 2012년 고미술품 경매에서 사상최고 금액인 34억에 낙찰되었다고 합니다.
<다 1,000원 속 계상정거도>
<정선의 계상정거도>
한국은행에서는 천원 지폐가 2장 또는 4장 연결된 지폐를 판매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40장전지를 판매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판매하고 있지 않습니다. 2장이나 4장이 연결된 지폐는 지금도 쉽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서원기업이나 한국은행 박물관 등에서 구입이 가능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천원. 이야기를 읽어보니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지금 지갑이나 주머니에 천원 지폐가 있으면 꺼내보세요. 그리고 지폐에 담긴 인물, 그림, 풍경, 문화유산 등을 유심히 보세요. 일상이 조금 더 풍족하고 재미있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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